adios1969 2023. 5. 29. 18:59

그 말이 맞다. 목차를 만들어라.
공부 동기부여 책에서 목차 만들기는 중심 주제였다. 그런데 어깨가 아파서 노트북으로 옮겨 쓰는 게 힘들었다. 아니, 귀찮았다. 시간이 없으니 눈에 무작정 눈에 바르자고, 수많은 암기팁도 무시했다. 시험 준비를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일이나 구하는 게 맞다고.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헛발질을 했다고.

나는 잦은 충동에 시달렸다. 여행 유투버 영상을 보니 마음이 두근두근 했다. 남은 돈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100만 원 정도는 탕진할 수 있지 않나. 5월에는 요가 에세이를 읽으며 당장 요가원에 등록을 하려고 했다. 오늘은 5월 29일이다. 밤마다 심장이 떨린다. 미래가 점점 더 선명하게 두려워졌다. 

그리고 다시 차근차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만 먹는다고 소망이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마음조차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험을 코 앞에 두고, 나흘간 공부를 외면했다. 공부를 하지 않는 기간 동안 마음은 더 많이 움츠려 들었다. 단기 합격을 욕심 낸 것이 나의 오만이었다는 걸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몇 개월 동안 힘들었던 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나에게 화를 내고 있던 것. 매일 같이 공부하지 않는 나를 탓했다.

기초 체력이 없는 사람에게 자꾸만 빨리 달리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기 앞서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왜 너는 늦은 주제에 저들만큼 빨리 달리지 못하느냐고 꾸짖었다. 나는 달려 보려 했지만 달릴 수 없었다. 숨이 너무 차서 걷다가, 그렇게 걷다가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그럼 그렇지. 다시 최저임금 일이라도 알아보자.

ㅣ내 주제에 무슨. 내 나쁜 머리를 탓하며 부모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 집 유전자가 어디 가느냐고.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잔뜩 빌려와 침대와 책상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두 페이지 넘어가는 게 힘들 정도로 책이 읽히지 않았다. 어떤 것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오늘 해가 보였다. 다시 비가 올 까 싶어 아침에 동네 운동장에 나갔다. 습하고 더웠다. 가져온 겉옷을 관람 석 의자에 던졌다. 런데이 어플을 깔았다. 어플에서 제공하는 코칭을 음성으로 들으며 걷다가 뛰다가 했다. 온몸이 뜨거워졌고 숨이 찼다. 마지막 남은 러닝을 포기하고 싶었다. 숨이 턱까지 올라오는 듯했다. 땀이 비오 듯 쏟아졌다. 오랜만이었다. 지쳤지만 매일 누워서 지쳤던 것과는 어딘지 다른 감각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