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날/2023년

집 밖으로...

adios1969 2023. 5. 4. 14:00

2023-05-04

정오

카페에 오기 전 내 책상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집에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할까. 무언가 밀어내는 마음이 느껴진다. 반 지하에 살 때는 이해가 된다. 집은 좁았고 추웠으며 더웠기 때문이다. 그 집에서 글을 쓴 기억이 손에 꼽힐 정도로 나는 집에서 무언가를 할 생각이 없었다. 글을 쓰려면 나가야 했다. 나는 돌아다니며 글을 썼던 것이 오랜 습관이 되어 내 신체 시스템으로 굳혀진 것 같다. 나는 이제 반 지하에 살지 않는다. 그곳에서 벗어나 지상의 집에서 산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방랑 벽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딘가 나가려고 한다.

문제는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밖에 나와도 에너지를 받지 못한다. 카페에 와도 한 시간 집중하는 게 힘들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통증은 1 1초를 쉬지 않고 일어난다. 아무리 쉬어도 피곤하다. 집 밖으로 나오면 금세 피로해져 불안해진다.

굳어진 내 신체 시스템은 학습이나 글을 쓰려는 마음이 들면 밖으로 나가라고 무의식처럼 명령하면 나는 등에 짐을 지고 나가는 게 맞는 지에 검열을 한다. 운이 좋으면 한 시간 안에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반나절을 고민한다. 어쩔 땐 그 고민이 지겨워 아무것도 가지고 나가지 않고 밖에 나가는 행위에 머물기도 한다.

어제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그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오가 되어서 외출을 했는데 노트북과 책을 들고 30분을 걸어 카페에 갔다. 조용했던 카페는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내 뒷자리는 너무 가까워 마치 같이 있는 것처럼 사적이 얘기가 이어폰 안으로 찔리듯 들어왔다. 나는 그곳까지 온 게 아까워서 억지로 앉아있었다. 그랑데사이즈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셔서 화장실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노트북에 워드를 띄워 무언 갈 써봤으나 언제나 똑 같은 것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기록으로써 가치가 없는 것들. 감정의 찌꺼기도 무엇도 아닌 글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의미 없는 조각들을 워드에 늘어놓았다. 지금 쓰는 이 글도 그것과 다름이 없다.

내 무기력의 원인이 뭘까. 목 디스크 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차라리 디스크면 나았을까. 오늘 11시 반에 집을 나왔다. 교보문고에 갈 생각이어서 조금 차려 입고 싶었다. 청바지 몇 개와 티셔츠와 셔츠 몇 개를 입었다 벗었다가 선택한 옷은, 맨날 입고 다니는 티에 사두고 한 번인가 입었던 화이트데님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이트데님에 나이키 데이브레이크를 신었다. 오래 신어 꾀죄죄한 데이브레이크와 화이트팬츠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걸 깨달았다. 햇빛 아래에서 보니 후줄근한 운동화에 비해 내 바지는 유난이 하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뒤축이 다 해진 무인양품 캔버스로 갈아 신고 싶었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95번을 기다렸다. 몇 분이나 걸었다고 지치기 시작했다. 버스가 오려면 한 참을 기다려야 했다. 날씨가 선선해서 앉아 있기 좋았고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게 더 어려운 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오늘 교보문고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려고 나왔다가 도서관으로 방향을 바꿨던 일도 많았다.  교보문고를 갈 때마다 욕심을 부린다. 신간도 읽어보고 수험서도 좀 보고 글도 쓰고 와야지,라는 야무진 계획을 세운다.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을 고쳐 먹었다. 교보문고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찍고 만 오더라도 말이다. 버스가 왔고 자리에 앉았다. 걸어도 동네 도서관에 가는 것보다 버스를 타고 서점에 가는 게 덜 피곤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그리고 역에 있는 카페에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돈이 아깝지만 서점에 가려면 버스를 꼭 타야 한다. 돈을 생각하면 당연히 걸어갈 수 있는 장소에 가는 낫겠지만, 사실 나는 조금만 걸어도 힘이 빠져 걸어서 30분 남짓 걸리는 동네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장소에 갈 때도 숱한 고민을 한다. 외출은 산책이 아닌 무언가를 얻어와야 하는 등가 교환의 규칙이 전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산책을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은 밖에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리게 하고 생각만으로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붇게 만들어 침대에 누워버리는 선택을 한 적도 많다.

나는 왜 이럴까. 병이라면 고칠 수 있는 걸까. 외출 준비가 어렵다. 지금 이 글을 쓴 중에도 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다. 거실에 있는 내 책상에 앉아 있는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이런 마음을 가져도 결국 집에 가면 나는 나가고 싶을 것이다. 해가 지기 전 도서관에라도 다녀올 결심을 하며 할 일을 미루고 있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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