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등기를 보내러 갈 때가 가장 즐거웠다. 적막한 사무실을 탈 출 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든 좋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때 이후로 우체국에 간 게 얼마 만이지. 오늘 등기 하나 보내는 데 대기 번호를 세 번이나 발급하며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회사에서 간단히 서류를 등기로 보내던 거 외에 우체국에 직접 가서 택배를 싸서 보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택배를 보낼 일이 있으면 미리 상자를 싸고 편의점에 가서 운송 장만 결재 했다. 지금까지 나는 최소한으로 우체국을 이용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 나는 우체국에서 원시인이 따로 없었다.
엄마에게 보낼 물건을 손바닥 사이즈의 얇은 패브릭 파우치에 보관해 가져갔다. 엄마는 그걸 등기로 보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등기만 생각했다. 갈색 직사각형 종이봉투를 말이다. 우체국 직원은 내 파우치를 보고는 등기가 아닌 소포 등기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왠지 모르겠으나 나는 소포 등기란 단어에 머리가 하얘졌다. 직원의 안내대로 무인 발급기에 가서 소포박스 1호와 소포등기 운송장을 선택해 결제를 했다. 그러고 난 후 액정에 물건을 옆에 두어 밀어 넣으라는 알림이 떴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내용물을 기계 위에 슬쩍 올려두고는 다시 뺐고 제출을 눌렀다. 절차가 끝났음을 알리는 화면이 나와 이제 끝난 건가 싶었다. 가만 소포 박스는 어디에 있는 거야? 당연한 말이겠지만 좀 전의 알림은 미리 싸둔 소포 박스에 방금 발급된 운송장을 붙여 기계에 올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박스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소포 박스를 받기 위해 다시 대기 접수 번호를 받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너무 멍청했다. 접시 물에 머리를 처 박고 싶다. 여하튼 사람들이 택배를 싸고 있는 데스크에 가봤는데 어디에도 소포박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택배를 척척 포장하는 모습을 봤다. 산속에 은거하다 몇십 년 만에 세상에 나온 사람처럼, 현대어를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허둥댔다. 눈이 부어 잘 떠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 답답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 속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얼 원하는 건지 내 속만 바라보며 있으면 짠 하고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시를 준비한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사연이 있어 은거를 한 것도 아니었다. 우체국에서 허둥대던 내가 너무 낯설었다. 너무 바보 같아서 나도 내가 답답해졌다. 키오스크 이용이 어려운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꽤 많이 멀리 나와버린 걸지도 모른다. 우체국 앞에서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생각했다. 나이 마흔에 뭘 배운 들 직장을 구할 수 있겠어, 라며 그 무엇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그래봤자, 안 될 거야,라고 결론짓고 괴로워하기만 했다.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간 만 보다가 몇 개월이 지났다. 어쩌면 새로운 것들에 부딪히고 깨지는 걸 아주 아주 두려워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나가지 않을 뿐, 그 자리에 멈춰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점점 뒤로 멀어지고 도태되고 있었다. 낯설 배움이 시급하다. 이러다 정말 원시인이 될지도 모르겠다.